2006.11~ 2007.12 Rwanda of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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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번째 해외여행이자 외국에서의 삶 모든 ‘첫 경험’이 르완다에서 시작되었다.

대학 3년을 다니고 심신이 지쳐있을때 신문광고에서 Koica 봉산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그날 바로 지원했다. 하늘에서 주신 운도 따랐고 모든일이 일사 천리로 진행되어 22살 르완다로 떠났다. 계획은 2년. 현실은 1년 반 정도 르완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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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는 천개의 언덕이라는 별명이있다. 정말 언덕이 너무 많아서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 쉽지 않다.

나는 르완다 국립 중고등학교에서 생물교사로 일했다. 처음엔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지만 반년이지나고 생활이 안정되고 난 후엔 르완다에 내 미래의 남편과 다시 가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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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여자들은 날씬하고 예뻐 유럽과 미국에서 모델로 많이 발탁되어 간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봐도 너무 예쁜 여자들이 많다. 너무 안타까운게 피부가 어두어 그 예쁜 얼굴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수술을 하지 않고도 날씬S라인이 가능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부러워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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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토바이들은 내가 자주애용한 나의 애마 택시다. 르완다 대중교통은 마타투라는 스타렉스 수준의 미니버스와 이 오토바이 그리고 택시가 있는데 택시는 많이 비싸고 마타투는 사람들과 살을 부딪끼며 타야 하기에 컨디션이 안좋은 날은 힘이 든다. 오토바이는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가장 쾌적하게 탈 수 있다.

 

 

르완다에서 지내면서 22살 어린 여자는 너무 외로웠다. 친구도 티비도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고 냉장고도 없고 영화관이나 쇼핑몰도 없고 무언가 혼자서 흥미롭게 지낼만한게 없었다.

그래서 200불을 주고 신디를 샀다. 그걸로 거의 하루 종일 치면서 노래 부르거나 노래를 크게 틀고 듣거나 음식을 해먹거나 현지인 친구들이나 현지에서 사귄친구들을 만나 놀았는데… 난 너무 할일 없는 반면 그들은 늘 바빴다. 그래서 외로운 시간이 너무많았다.^^

교회를 다녔다. 캐나다 목사님 교회였는데 처음엔 천막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컨테이너 교회를 설립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려 했으나 한국교회와 다르게 여기는 교인들을 많이 부르지 않는다.

주일에도 예배는 딱한번! 밥은 집에서 각자 가족과 함께! 주말이면 정말 심심해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운동하는 곳에서 만난 네덜라드 선교사님!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일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는데 나도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제안! 그모임은 전세계에서 온 선교사님들이 모여 모임을 갖는다고 나도 와서 함꼐 하자고 했다. 영국, 네덜란드, 미국, 호주, 필리핀, 남아공에서온 이분들과 어울리면서 영어도 많이늘고 성경공부도 같이 하고 외롭지 않았다.

자존감도 높아지고 성격도 밝아지고 배려심도 많아지고(그때만^^) 내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기이다.

<선교사님댁 앞마당에서 아이들이랑 뛰어노는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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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한국인 선교사님 산꼭대기 마을에 가서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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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초대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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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다. 성당에서 한번 신부 집에서 한번 피로연에서 또 한번.

정말 길~~었다. 보다 보다 지쳐서 끝까지 못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르완다의 배달시스템과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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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조끼를 입고 있다. 우리나라돈 500원을 주면 짐을 들고 나의 쇼핑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차에 실어 주는거 까지 해준다. 난 외국인이라 킨야르완다어를 잘 모르니 어쩔땐 가격흥정까지 해준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같다고 생각한다. 잘사는 사람이 있으면 못사는 사람이 있고 착한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고…

르완다는 삶의 편리함은 한국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마음의 여유와 욕심은 없어지게 해준다.

내가 외국인으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늘 여유 있었고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곳에서 한국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거 처럼 보였다. 르완다에서는  24시간동안 100m를 걸어간다면 한국은 24시간동안 10000m을 뛰어가는거와  같게 느껴졌다.

그 여유를 다시 느끼고 싶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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