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10, 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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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42~43절.  “하나님을 모르는 통치자들이 얼마나 위세를 부리는지, 사람들이 작은 권력이라도 얻으면 거기에 얼마나 빨리 취하는지 너희는 보았다.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그동안 내가 살면서 작게는 있었지만 권력의 오남용을 크게 겪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과 결혼하고 남편의 연구소 상사들과 그의 관련된 사람들을 보고

권력의 오남용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 인생의 반면교사가 생긴 것 같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데 남편이 회사를 옮기고 내가 남편에게 코치하기를

그 권력을 오남용했던 사람 처럼 완전히 같게는 안해도 적어도 비슷하게 하라고 코치 하고 있다.

 

오히려 남편은 학생들과 같은 입장에서 이야기 하고 의견을 나누려고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꺼리고 거기를 두고

위엄있게 있으라 한다. 이런 점을 반성한다.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서 권력 오남용이 보편화 되다 보니 남편 같은 사람은

밑에 사람한테도 무시 받을 수 있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섬겨 주면 섬김 받는 사람이 섬겨주는 남편을 더 무시한 경우를 보고

나는 매우 화가 났던 적이 있다.  나는 그게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자기 연구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어 한다.

그만한 능력도 있는것 같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른다면 지금 보다 섬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저희 가정이 주님께 영광 돌리기에 합당한 가정이 되게 하소서.

저희 남편 앞날에 희망이 가득 차고 또한 믿음이 가득차는 앞날이 되게 하여 주세요.

 

 

하나님 저는 예수님을 찾아간 부자와 같습니다.

부자가 아님에도 부자가 될 수 있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주님과 멀어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요.

이런 저를 용서하여 주세요.

 

아멘.

1 COMMENT

  1. 어릴 적에는 초등학교 시절에 도덕이라는 수업을 듣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에는 성선설을 믿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도덕 성적이 나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어릴 적 듣던 도덕이라는 수업 내용들이 기억에 정확히 남지는 않지만, 어느 경우가 나쁘다는 것인지는 알고 있다고 자부해요.
    아마 그런 교육이 없었다면, 저는 제 욕심이 시키는데로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조금 최근의 과거에서는 성악설을 다시 믿고 있었어요.
    친절하게 대해주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서운함이라던지,
    예쁘게만 보이는 조카들이 본능에 가까운 욕심의 투정들을 바라볼 때,
    부모의 도덕적인 가르침이 없을 때에는 그 아이들의 태도가 점점 이기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되면서
    사람의 본성이 착한 것만은 아니구나라고 느꼈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는 사람들의 이런 본성을 성서에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지금은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닌 사람들의 본성은 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본성도 중요하지만,
    본성을 조절할 수 있는 이성, 인성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매일 하는 QT가 우리의 인성에게 좋은 방향을 이끌어 주길 바랍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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